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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및 비평

지난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방문했을 때,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에 대한 기록을 미루었다. 오늘 다시 방문하게 되어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지난 방문 관람기)


서론에서 내게 인상적이었던 작품 두 점에 대한 짧은 심미비평을 남기고, 본문에서는 대화하며 나온 몇몇 주제를 풀어서 기록으로 남기겠다.

사실, 심도깊게 논하고 싶은 작품이 정말 많지만, 사진을 별로 못 찍었다! 친구와 작품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논의하다 보니 사진 찍기를 잊었다... 그래도 괜찮다! 또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대신 친구와 나눈 이야기 중, 흥미로운 몇몇 주제를 기록으로 남기겠다.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

고영훈, 스톤북, 1985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누구나 극사실주의의 기법으로 그려진 초현실주의 회화 작품이라고 여길 것이다. 책의 활자 표현이 놀랍도록 사실적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책의 낱장들이 교차하며 허공에 떠있기 때문이다. 돌 또한 그렇다. 저런 배치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캡션의 사용 소재 부분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 책의 낱장들이 '실제 책의 낱장'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책의 낱장을 잘라서 정교하게 배치하고, 그 위에 그림자와 돌을 그려내었다. 놀랍도록 정교해 보였던 책은 실제로 인쇄된 활자이며, 그림자와 돌만이 회화로서 그려진 것이다.

엄청난 충격이 아닌가? 이것을 처음 목도하였을 1985년의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정말로 신선하고 놀라운 시도였으리라.

충격이 지나가니 스페인의 화가인 Pejac이 그린 'Fossil'이 떠올랐다.

Pejac, Fossil, 2018. (Brooklyn, New York, USA)

Pejac의 작품은 여기서 확인 가능하다. 위의 이미지 또한 해당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하였다.

나무 화석을, 멀쩡한 벽에 회화로 구현해낸 작품이다. 음영을 그려서, 마치 벽돌이 빠져서 나무 모양을 이룬 듯 말이다. 고영훈의 '스톤북'과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 둘 다 흥미로운 작품이다.


흥미로운 작품

이승조, 핵 No.86-29, 1986. (Nucleus No.86-29)

전시 구성상 '추상미술'을 모아놓은 곳에 전시되었고, 언뜻 보면 추상미술로 보인다. 이 작품을 제목 없이 보았을 때, 작품 내부의 형상과 색으로부터 어떠한 대상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고도로 추상화 된 형상이 현실의 무언가를 연상시키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제목을 보는 순간, 그 의문은 깨끗이 사라진다. 이 그림은 추상화가 아니라 구상화다. 나와 내 친구 모두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Nucleus. 이 그림에서 표현하는 대상은 염기서열이다.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

재미있지 않은가? 제목이 문지기로서, 닫힌 문을 열어주는 것이 말이다.

다소 아쉬운 것은, 이러한 구상적 요소를 통해, 그리고 이 요소의 배치를 통해 얻어지는 이미지가 딱히 확장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내 능력이 부족하여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지금의 나는 순간의 깨달음으로부터 얻어지는 작은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없다.

본론

1. 내가 생각하는 좋은 추상과 나쁜 추상

구상과 추상을 양 극단에 놓고 개별 예술 작품을 배치해 보자. 극사실주의의 회화나 사진은 구상에 가깝고, 도통 이해를 할 수 없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의 작품이 추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구상은 현실의 대상을 연상시킬 수 있는 명확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고, 추상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추상예술로 분류되는 작품 속에 구상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추상화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대상이라 연상할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대상들의 배치로부터 이미지가 형성되고, 우리는 작품을 향유하며 사고의 확장을 경험한다. 작가의 의도를 유추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와 무관하에 작품이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게 된다.

나는 그 탐구 과정이 재미있는 작품을 '좋은 추상'이라 정의하겠다. 작품의 향유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경우를 '나쁜 추상'이라 정의하겠다. (이때 좋고 나쁨의 기준은 '재미' 하나뿐이다. 순수한 추상에 가까운 수많은 예술작품들의 가치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그런 작품들이 재미없다는 말을 하는 것 뿐이다. 아마도 많은 예술인들이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너무 극단적으로 추상적인 작품들은 (적어도 나에게는)재미가 없다. 예술 작품을 집이라 비유한다면, 우리는 예술 작품이라는 집에 들어가서, 이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인지 등의 다양한 생각을 한다.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며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이때 추상예술은 문이 잠긴 집과도 같다. 그러니 재미가 있을 수가 없다.


여기까지 친구에게 설명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너가 좋은 추상예술을 못 봤을수도 있어."

동의한다. 솔직히 살짝 당황했다. 내가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이 잠겨 있으면 어떤가? 집의 외관만 보아도 큰 감명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말하자면 순수 추상에 가까운 극단적인 작품들도, 수용자에게 큰 재미나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롯데타워같은 마천루를 바라볼 때, 그 내부를 보지 않아도 즐겁다! 예술 작품의 의미는 '실재계의 무언가를 이미지를 통해 상징계로 표현해내는 언어 지평의 확장'에 있는 것이지, 그 방법론의 일환으로서 '구상적 요소의 배치를 통한 이미지 생산'에만 의존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또다른 방법으로서 극단적인 추상화를 감행하는 것이 있고, 그러한 시도 대부분이 재미 없지만, 모두 재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정말로 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의 극단적인 추상 회화에서조차도 이미지는 생성된다. 그것이 우리의 오감을 통해 감각되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이미지가 유효한 의미를 이루어, 실재계의 무언가를 표현한다고 해석하기가 어려울 뿐. 심지어는 작품 외적인 요소로 인하여 이미지가 형성되기도 한다. 노동집약적인 작품들이 있지 않은가? 작품의 제작 방식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며 또다른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하는 것이다.


2. 예술가의 의도를 얼마나 중요시 하는가

앞서 구상적 요소에 기반한 추상예술의 해석 과정이 즐겁다고 하였다. 이는 추상과 구상을 막론하고 모든 예술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해석의 결과가 작품 설명에 의해 부정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는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요소가, 예술가의 의도와 정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 나는 예술가의 의도를 별로 중요시 하지 않는다. 나는 분명 예술가의 의도를 추론하지만, 그것이 실제 예술가의 의도와 일치했는지는 어디까지나 추가적인 재미 요소일 뿐, 진정한 예술 감상의 재미는 해석 과정 자체가 갖고 있다. (해석의 결과마저 일치한다면 더욱 즐거울 뿐. 핵심은 과정이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이러한 생각이 더 명확해 진 것 같다.


3. 영상과 사진의 차이

"어디부터가 영상이고 어디부터가 사진인가?"

나는 수용자가 떠나기 전에 다음 이미지가 제시된다면 영상이라고 주장했다. 친구는 최근 그 구분이 무의미한 것이라 느껴진다고 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그 구분은 초당 몇 프레임 부터인가? 동적인 이미지 형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실존하기는 하는가?

꽤나 납득이 간다. 그 구분은 무의미하다. 시간의 상대성은 비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에서 시간이란 선형적이지 않고, 역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4. 결론

정말 좋은 전시이다. '하이라이트'라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것이 이해된다.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다른 전시와 달리 필살기를 마구 쏟아내는 느낌"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 예술의 지평을 확장해낸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 놓았다. 시간이 허용하는 만큼, 반복적으로 오는 것도 좋으리라.


2025-07-16 감상 및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