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현재 나는 문예창작과의 졸업요건을 맞추기 위해, 졸업작품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소설을 어떻게 작성할지 설계는 완성했으나, 도저히 글이 나오지 않는다. 마음이 몰려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조로운 삶이 내게서 영감을 앗아갔는가? 어찌 되었든 환기가 필요했다. 긍정적인 충격. 신선한 감각이 필요했다.
그런 사유로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솔직히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하루 정도는 비울 수 있다. 앞뒤로 일을 밀어내어 금요일을 비웠다. 그리고 함께 갈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세 명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1~3일 전의 제안은 역시 촉박한 것이리라.
오늘은 3개의 전시를 보았다.
<<한국근현대미술 I>>은 관심이 별로 없는 관계로 가볍게 훑어 보았고, 별도의 기록을 남기지 않겠다.
<<아더랜드 II>>의 경우는 별도의 문서로 정리하겠다. (두 점의 작품이 전시되었어야 했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Akram Zaatari'의 전시가 중단된 상태였다. 추후 다시 방문하게 되어, 두 작품을 함께 보았을 때, 기록을 남기겠다.)
Akram Zaatari 전시 입구.
과거 <<아더랜드>>를 보러 갈 때에도 혼자였다. 당시에도 다소 촉박하게 관람을 제안했다. 타인의 세계를 엿보기 위해서는 혼자일 수밖에 없는가? '아더랜드'를 홀로 보는 상황이 아이러니를 준다. 모든 감각의 수용은 개인적이다. 같은 영화, 소설, 그림 등을 보아도, 기억은 다르다. 같은 색을 보아도, 같은 설명을 들어도 기억은 다르다. 그러므로 타인의 세계를 보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소설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인물이 살아갈 세계를 엿보는 일 또한 고독하다. 필연적으로.
본론
전반적으로 굉장히 교육적이라고 느꼈다. 예술 이론을 잘 모르는 사람이, 큰 범주로 예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누가 큐레이팅 했는지가 궁금할 정도이다. 다음의 10단계 소제목을 보면, 얼마나 탁월한 전시 구성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구상, 추상, 전위의 큰 개념을 확실히 감각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미, 추, 환상, 그로테스크, 키치 등의 다양한 개념은 부차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저 세 가지 개념이 아닌가? 솔직히 이 미술 전시 목록을 기반으로 책을 써도 좋다고 생각한다. 대표 작품을 뽑아내고, 풍부한 해설과 비평을 곁들여서 말이다. 제목은 "한국 근현대 미술로 보는 예술 첫 걸음" 정도가 어떨까?
허종현, 탄생-A, 1967
[4. 추상미술의 확산]에 있었던 작품 같다. 추상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하던 시기. 그러나 전기적으로 작품을 보고 싶지는 않다. 순수한 심미적 관점에서 보아도, 이 작품은 강렬하다.
현대 미술에서 순수 추상이 쇠락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쉬르와 라캉의 이론을 빌리자면)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실재계의 무언가를 상징계로 옮겨내는 '이미지 형성'이기 때문 아닌가? 순도 높은 추상은 역설적이게도 수용자의 해석을 저해한다. 실재계에 무엇보다도 가까울 것 같지만, 오히려 상상계에 가깝게 읽힌다는 말이다. 이미지는 곧 대상들의 배치로부터 수용자에게 수용되며 형성되는 것이고, 다분히 구상적인 요소로부터 피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 '탄생-A'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가 다분히 구상적이기에, 추상 미술로서 내게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이다. 특히 저 눈 처럼 보이는 부분의 상세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허종현, 탄생-A, 1967
일종의 실, 실 아래의 무언가, 그리고 경향성 있는 실의 배치 사이의 갈라짐. 눈의 형상만으로도 탄생의 이미지를 파생시킬 수 있어 보이는데, 그 눈의 구성 요소가 무언가의 태동과도 같은 형상을 갖고 있다. 상당한 미적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파도가 갈라지는 듯 하기도, 알이 깨어져 무언가가 나오는 듯 보이기도 한다. 특히 저 실 아래의 무언가가 알과 같은 느낌을 형성한다. 안에서 무언가가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듯 한 역동적인 이미지.
이것이 구상적 요소에 기반한 추상화의 좋은 예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매우 즐겁게 보았다.
박석원, 초토, 1968
박석원, 초토, 1968
'초토화' 라고 할 때의, 그 '초토'이다.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다. 굉장히 오랫동안 살펴보았다. 주변을 빙빙 돌면서, 천천히.
캡션에는 '알'의 형상이 파괴되었다는 느낌의 설명이 있었는데, 나는 정 반대의 인상을 받았다. 파괴가 아니라 탄생으로 말이다. 저 덩어리 내부에는 마치 생물의 골격같은 형상이 있다. 저것이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초토화'되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미생물에 의해 침식당한 모습을 상상했다. 무언가가 저 덩어리를 먹어치우며, 번식하고 번성하는 모습 말이다. 알이 아니라 어떤 생물의 일부로, 초토가 아니라 미생물의 번성을 이루는 기름진 토양으로! 파괴가 아닌 탄생으로!
거대 생물의 사체와 미생물의 번성...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해석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한편 조각의 구성물이 놀랍도록 생명을 잘 연상시킨다. 내가 골격이라고 느꼈던 부분을 포함하여, 각 부분들이 둥글게 말린 거대 생물의 사체 일부로 느껴진다. 이 작품 또한 내가 앞서 말한 '구상적 요소에 기반한 좋은 추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전체로 보면 분명히 명백한 해석이 불가능한 추상미술이지만, 세부 요소를 잘라놓고 보면 놀랍도록 구상적이다. 그리고 그 구상적 요소들의 배치로부터 이미지가 생성되고, 수용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
강국진, 시각 I,II, 1968
어처구니가 없어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전위는 그 역할을 다하면 기존의 방식으로 편입되면서 그 의미와 힘을 잃는다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하다. 일종의 유머인가?
네온 조명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 특유의 소음. 조명이 노후되며 특히 심해지는 그 소음이, 이 작품에서도 들린다. 특히 왼쪽의 붉은 조명에서 훨씬 큰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소음 수준의 차이가, 수용자로 하여금 머리를 저 사이에 넣고, 어느 쪽에서 나는 소리인지를 감각하게 한다. 이 작품의 이름은 '시각'이지만, 역설적으로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이것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처음 작품을 만들었을 때에는 소음의 수준이 동일하여 지금과 같은 효과를 일으키지 않았으리라는 점 때문이다. 기계에 대한 무지로 작품이 변질되었다. 사실상 사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초의 상태를 상상하고 보아도, 유효한 의미를 산출하기 힘들다. 전형적인 전위예술. 속이 비었다.
차라리 네온이 한 쌍만 있었다면 눈꺼풀 모양으로라도 읽히지 않았을까? 왜 두 쌍일까? 색상은 왜 저 두 색으로? 시각 I 과 II의 의미는? 온통 의문이다. 그 무엇도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공허함이 인상적이다.
전시장에서 가장 전위적인 작품을 고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작품을 고를 것이다.
박이소, 무제, 1994
아크릴 튜브에 간장과 야구방망이를 넣은 작품이다.
나는 이것을 처음 보았을 때,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안에 들어간 것이 무엇인지조차 해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목 또한 '무제'가 아닌가? 아무리 전위예술이라지만, 1994년의 작품이 다다이즘과 같은 실패한 예술을 답습하지는 않을 터. 곧이어 작품 설명을 다시 보니, 재료가 간장과 야구방망이가 아닌가? 빵 터졌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2025년에 보아도 매우 전위적인데, 1994년에는 얼마나 전위적이었겠는가? 누가 간장에 야구방망이를 재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다만 단지 약간의 웃음을 주는 것에서 그치는, 깊은 사유가 없는 소품에 불과한 점이 아쉽다.
총평
상당히 교육적인 전시.
흥미로운 작품이 많은 전시.
기회가 된다면 세 번 정도는 또 와도 좋을 전시.
2025-07-11 방문 및 관람기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