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cism] 상처를 안고 기억 속에 박제되어버린 나를 바라보며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1)의 「불이 있었다」2)를 대상으로, 전기적인 요소 및 다른 시와의 상호작용을 배제한 순수 심미비평을 수행하겠다.
시집을 처음 열고 마주하는 「불이 있었다」의 절제된 슬픔이 인상적이었던 관계로, 이 시를 선택하였다.
1) 창비시선, 2025년 7월 14일, 초판 33쇄
2) 10~11페이지
그는 날이 제법 차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금 외롭다고도
오늘은 불을 피워야지
그는 마른 장작을 모아다 불을 피웠다
봄아 피어나라 봄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불을
꿈꾸었다
삼키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
태우는 불이 아니라 쬘 수 있는 불
이런 곳에도 집이 있었군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호주머니 속 언 손을 꺼내면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손금이 뒤섞이는 줄도 모르고
해와 달이 애틋하게 서로를 배웅하고
울타리 넘어 잡풀이 자라고
떠돌이 개가 제 영혼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가
내 안에서 죽은 나를 도닥이다 잠드는
불은 꺼진 지 오래이건만
끝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
불은 조금도 꺼지지 않고
안희연, 「불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6연이다. 손을 잡는 모습.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모습. 엄청난 시간이 흘러 풀이 자라 올라오는 모습. 떠돌이 개가 죽어 없어지는 길고 긴 시간. 두 사람이 사랑하고 아주 빠르게 일생을 상상하는 모습. 놀랍도록 아름다운 표현들이다. 특히 앞의 세 문장이 좋다. 5연과 같이 따스한 불을 피울 수 있기를 꿈꾸는 주체가 상상하는 사랑의 모습.
한편으로는 누구의 생각인지가 모호하게 기술되었기에 생기는 효과 또한 있다. 시는 ‘그’가 외롭다 생각한다며 독자에게 설명하며 시작한다. 직후 기술되는 2연부터 7연까지는 ‘그’의 생각일까? 아니면 최초에 상정된 주체의 생각인가? 의문은 또 있다. 8연은 일견 ‘나’의 생각으로 읽히지만, 8연과의 연장선으로 해석하여 ‘그’의 생각일 수도, ‘나’의 생각일 수도 있다. 더욱 모호한 지점은 9연이 ‘나’도 ‘그’도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외롭다’는 단언으로부터 생기는 외로움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한 의도적인 블러(blur) 처리로 읽힌다. 일종의 수사법으로서 시의 전체 분위기를 환상(꿈)의 영역으로 밀어 넣어 흐리게 만들고, 그것에 대한 힌트로서 시의 2행이 기능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신선하게 보았다. 일반적으로 예술가가 표현하려는 실재계의 대상은, 그것을 추상화하여 얻어진 관념으로 표현할 수 없다. 해당 관념을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순간, 추상화 과정에서 소실된 정보에 의해 작가가 의도한 실재계의 대상은 영영 표현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불이 있었다」는 의도적인 주체의 분열(적어도 분열한 것처럼 혼동되는 분리)을 통해 ‘외롭다’는 관념이 지니는 추상화의 수준을 낮추어(되돌려)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 확정한 관념을, 2연부터 시작하는 주체의 분열로서 관념이 아니도록 되돌려 낸 것이다.)
8연에서 가장 길게 머물렀다. 1~7연의 내용은 굉장히 직관적이다. 그러나 8연은 다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가 내 안에서 죽은 나를 도닥이다 잠든다니. 이때 주체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과거로 타임슬립해서 영혼 상태의 시야를 획득했다고 독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주체의 분열을 통해 환상(꿈)의 느낌을 갖추었다고 해도, 그것은 너무 과도한 해석이다. 그러므로 8연의 ‘나’와 ‘내 안에서 죽은 나’는 시에 등장하는 주체 중 하나일 것이다. 처음에 확정된, ‘그를 바라보는 나’ 또는, ‘그’일 가능성이 높다. 이 지점부터는 독자 개개인의 해석의 몫이리라. 개인적으로는 ‘그’와 ‘그를 바라보는 나’는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실제 주체의 부분집합이라 느꼈다. 그러므로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나’는 사랑을 알게 된 이후의 나이고, ‘내 안에서 죽은 나’는 ‘상처를 안고 기억 속에 박제되어 버린 나’가 아닐까? 이렇게 보면 아주 처연하고 슬픈 시이다. 과거의 상처를 보듬기 바라는 주체의 마음. 그러나 당장은 외롭고, 또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불’ 따위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마지막 연이 그렇다. 마지 앞서 보여준 모든 장면이 진짜로 일어났던 일 인 것인 양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태도로 말하는 내용은 또 어떤가? 끝나지 않은 것들이 있어 불이 조금도 꺼지지 않는다니. 시인이 독자에게 슬픔과 외로움을 다루는 한 방법을 들려주는 듯하다. ( * )
원고 작성일: 2025-09-23
게시일: 2026-02-20